[글마당] 소하의 죽음에 대한 남자들의 불라불라
소하의 죽음에 대한 친정 식구들은 시부모 구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시집 식구들은 미국에 초청한 친정 식구들이 자리 잡는데 도와달라는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여자들 말로는 ‘남편의 외도로 속 썩이다’가. 또 다른 엇갈린 소문은 소하가 남편 몰래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해 동분서주하다가 열 받아서 쓰러졌다고 남자들은 쑥덕거렸다. 교포입네 하고 남자들이 한국에 나가서 예쁜 색시를 데려오곤 했던 1970대 초, 미국으로 이민 간 오빠 친구가 한국에 나와서 창숙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서둘러 결혼하고 미국으로 데려왔다. 기술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하고 미국에 온 창숙 남편은 정비소에서 일했다. 엔진오일 묻은 작업복을 입고 기름때 낀 손으로 자기 몸을 더듬는 남편이 귀찮고 싫었다. 창숙은 속아서 한 결혼이라며 주말이면 LA 갈비 씹듯이 불평불만을 질근질근 씹었다. 창숙은 6개월 동안 빈둥거리다가 돈을 벌어 집도 사고 꿈꾸던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소하의 바느질 공장을 찾았다. “일 배워보고 싶어 왔습니다.” 뽀얀 피부, 커다란 눈, 부푼 가슴을 자랑하듯 내민 창숙의 상냥한 목소리에 직공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고 바느질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화려한 창숙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소하는 마치 동공이 닫혀 보이지 않았던 물체를 확인하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넋 나간 듯 창숙을 쳐다봤다. 창숙은 그 순간 왜 사람들이 ‘쉬엄쉬엄 일해도 뭐라지 않고 소하가 제 한 몸으로 다 때우는 여자’라는 동네 소문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창숙이 소하 밑에서 일하면서 시집 식구에게 구박받는 소하를 보고 있자니 부아가 나서 못 참고 “왜 그렇게 죽어 살아요. 일만 하지 말고 바람도 쐬고 멋도 부려요. 누구를 위해 돈을 버는데요. 제대로 대접도 받지 못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인 줄 알아요. 시집 식구와 맞서서 자신의 위치를 다져야 해요. 돈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운전면허증도 따요. 도와줄게요.” 얼마 후 창숙은 재봉질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그만두었다. 그리고 카지노 딜러가 된 후 남편과 이혼했다. 소하는 그동안 틈틈이 익힌 운전 솜씨로 마음이 심란할 때면 창숙을 만나러 갔다. 쇼핑도 외식도 하며 점점 자신만을 위한 삶을 터득했다. 창숙은 카지노 딜러가 성격에 맞는지 인기가 좋았다. “언니 나 골수암이래. 수술해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어. 급전 좀 해줄 수 있어요? 부탁이야.” 시댁, 친정과 남편에게 돈으로 시달리는 소하는 돈거래만은 누구와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나마 자기에게 살갑게 구는 창숙이 암 수술을 해야 한다니! 4년 전, 쌈짓돈을 들고 가서 꿔줬다. 창숙은 의사의 오진으로 암 수술할 필요가 없었다고도 하고 급전이 필요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딜러가 수입이 좋다는데. 나에게 빌려 간 돈 이자는 그만두고 원금이라도 조금씩 갚았으면…” 소하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창숙은 빌려 간 돈을 기억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딴청을 떨었다. 소하는 할 말을 잃고 서둘러 차를 몰고 집으로 향했다. 그동안 창숙만은 믿고 마음을 줬는데. ‘너마저도 나를 버리다니!’ 차를 몰고 오며 소하는 잘못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한탄했다. 상대의 허점을 이용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두려웠다. 차창 밖으로 지는 해를 바라봤다. 하늘에 피를 토하는 듯한 붉은 해를 마주하자, 뇌에 통증이 왔다. 토하고 싶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시야가 흐려졌다. 쓰러졌다. 이수임 / 화가·맨해튼글마당 죽음 남자 창숙은 카지노 창숙은 재봉질 창숙은 의사